1970년대 한국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중화학공업이 확대됐고, 수출은 계속 증가했다. 포항제철, 조선, 자동차, 기계, 석유화학 같은 산업이 성장하면서 한국 경제의 생산능력도 크게 커졌다.
하지만 성장의 속도가 빨라질수록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를 위해 많은 돈을 빌렸고, 정부는 금융기관을 통해 자금을 특정 산업과 기업에 집중시키는 방식으로 산업화를 지원했다. 그 결과 생산능력은 빠르게 늘었지만, 기업의 부채 부담도 커졌다.
여기에 1979년 제2차 석유파동과 정치·사회적 혼란이 겹쳤다.
1980년 한국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이제 한국 경제는 또 다른 질문 앞에 놓였다.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을까?
1. 1980년대, 성장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생겼다
1980년대 초반 정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경제 문제 가운데 하나는 물가 안정이었다.
1970년대의 빠른 성장 과정에서 물가 상승과 대외 불균형이 누적됐기 때문이다. 따라서 1980년대에는 무조건 투자를 확대하는 것보다 물가를 안정시키고 경제의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가 나타났다.
바로 경제 자유화와 금융자율화였다.
1970년대까지는 정부가 은행의 자금 배분에 강하게 관여했다. 어떤 산업에 돈을 빌려줄 것인지, 어떤 기업을 지원할 것인지가 정부의 산업정책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1980년대에는 이런 방식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은행 경영에 대한 정부의 직접적인 통제를 줄이고, 금리를 자유화하고, 무역과 금융시장을 개방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KDI의 당시 연구도 1980년대 한국의 금융개혁을 정부 주도의 산업 지원에서 보다 시장 중심적인 방식으로 전환해 가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문제가 하나 있었다.
시장에 맡기려면 시장의 위험을 관리할 제도도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이 스스로 기업의 신용도를 판단해야 한다면 기업의 재무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금융기관이 위험을 부담한다면 그 위험을 감독할 제도도 필요하다.
한국은 금융자율화를 진행했지만, 정부 주도 경제에서 시장 중심 경제로 넘어가는 과정이 한 번에 완성된 것은 아니었다.
이 문제가 1990년대에 더욱 중요해진다.
2. 1980년대 후반, 한국 경제에는 새로운 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1980년대 중반 한국 경제에는 또 한 번 큰 변화가 나타났다.
이른바 3저 호황이었다.
유가가 낮아지고, 국제금리가 낮아지고, 달러 가치가 낮아지면서 한국처럼 수출 비중이 높은 경제에는 유리한 환경이 만들어졌다.
수출이 크게 늘었고 기업의 수익성도 좋아졌다. 경상수지는 흑자로 돌아섰다.
이것은 한국 경제에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1970년대까지 한국 경제가 항상 고민했던 것 가운데 하나는 외화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였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에는 오히려 외화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 경제의 자신감도 커졌다.
이제 한국은 단순히 외국에서 돈을 빌려 산업화를 해야 하는 나라에서, 세계시장에서 물건을 팔아 외화를 벌 수 있는 나라로 바뀌고 있었다.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이어졌다.
“그렇다면 금융시장도 세계와 더 연결해도 되는 것 아닐까?”
바로 여기에서 1990년대의 변화가 시작된다.
3. 1990년대, 한국 경제는 더 많이 개방되었다
1990년대 한국 경제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세계경제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1990년에는 시장 기반의 환율제도가 도입됐고, 1992년에는 외국인의 국내 주식시장 직접투자가 부분적으로 허용됐다. 1990년대 중반에는 금융시장과 자본계정의 자유화가 더욱 진행됐다.
1996년 한국은 OECD에 가입했다.
이 시기의 한국 경제를 이해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역의 세계화만 진행된 것이 아니라 금융의 세계화도 진행됐다는 사실이다.
물건을 외국에 팔고 사는 것뿐만 아니라,
돈도 국경을 넘어 더 자유롭게 이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것은 분명 새로운 기회였다.
한국 기업들은 더 많은 자금을 이용할 수 있었고, 금융기관도 해외 금융시장과 연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도 생겼다.
4. 문제는 ‘얼마나 빌렸는가’보다 ‘어떤 돈을 빌렸는가’였다
여기서 1997년 외환위기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개념이 하나 등장한다.
단기외채다.
기업이나 금융기관이 해외에서 돈을 빌릴 때, 몇 년 뒤 갚아도 되는 장기자금이라면 상대적으로 시간을 벌 수 있다.
하지만 1년 이내에 갚아야 하는 단기자금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계속해서 돈을 빌려 갚는 방식이 가능할 때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외국 금융기관이
“이제 돈을 더 빌려주지 않겠습니다.”
라고 하면 상황이 급격하게 바뀐다.
한국의 금융기관들은 1990년대 자본시장 개방 과정에서 해외 단기자금에 대한 접근성이 커졌다. IMF는 당시 한국의 자본 자유화가 장기자금이나 외국인 직접투자보다 단기 외화자금의 유입을 상대적으로 빠르게 확대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다고 지적한다. 또한 금융기관의 외화 유동성 만기 불일치도 문제로 작용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구조였다.
해외에서 단기로 달러를 빌린다 → 국내 기업에 자금을 공급한다 → 기업은 공장과 설비에 투자한다.
그런데 공장과 설비는 당장 현금으로 바꿀 수 있는 자산이 아니다.
따라서
빌린 돈은 빨리 갚아야 하는데, 투자한 자산은 쉽게 현금화하기 어려운 구조
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
평소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금융시장이 불안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5. 여기에 대기업의 과도한 투자가 겹쳤다
1990년대 한국 기업들은 계속 성장하고 있었다.
특히 대기업들은 반도체, 자동차, 화학, 기계 등 여러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확대했다.
성장하는 경제에서는 이런 투자가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모든 투자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자기 돈만으로 투자한다면 실패했을 때 손실을 감당할 수 있다.
문제는 빚을 이용해 투자 규모를 크게 늘렸을 때다.
투자가 성공하면 수익률이 커질 수 있지만, 반대로 사업이 예상대로 되지 않으면 빚의 부담이 기업 전체를 흔들 수 있다.
1994~1996년 한국의 재벌들은 국내 은행을 통한 차입을 크게 늘리면서 공격적으로 투자를 확대했다. IMF는 이러한 기업의 투자 확대가 금융기관의 단기 외화차입 증가와 연결되었다고 설명한다.
결국 1990년대 중반 한국 경제에는 서로 연결된 두 가지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기업은 많은 돈을 빌려 투자했고,
금융기관은 해외에서 단기자금을 끌어왔다.
이 구조는 경제가 계속 성장할 때는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하지만 성장률이 떨어지고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면 문제가 한꺼번에 나타날 수 있었다.
6. 1996년부터 균열이 보이기 시작했다
1990년대 중반 한국 경제의 상황은 이전과 조금씩 달라졌다.
특히 1996년에는 교역조건이 크게 악화됐다.
한국 기업들이 수출을 통해 얻는 수익성이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국내 수요도 둔화됐다. IMF는 1996년 교역조건 악화가 기업의 이미 낮아진 수익성을 더욱 떨어뜨렸다고 분석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한국 경제가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무너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기업의 수익성 악화 → 기업 부실 증가 → 금융기관의 부실 가능성 증가
라는 연결고리가 먼저 나타나고 있었다.
1997년에는 한보, 삼미, 진로, 기아 등 대기업의 잇따른 부도가 발생했다.
대기업이 무너진다는 것은 단순히 한 기업이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었다.
대기업에 돈을 빌려준 은행도 영향을 받는다.
은행이 부실해지면 다른 기업에 돈을 빌려주기 어려워진다.
기업이 자금을 구하지 못하면 투자와 생산이 줄어든다.
생산과 투자가 줄면 기업의 수익도 다시 악화된다.
즉,
기업 부실 → 금융기관 부실 → 신용 위축 → 기업 부실
이라는 악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한국 경제는 점점 금융위기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KDI 역시 1997년 한국의 위기를 외환위기와 금융위기가 결합된 ‘쌍둥이 위기’로 설명한다.
7. 그런데 결정적인 충격은 해외에서 왔다
한국 내부에 문제가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1997년처럼 큰 위기가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에서 아시아 금융위기가 등장한다.
1997년 7월 태국에서 금융위기가 발생했고, 이후 아시아 여러 국가로 금융시장의 불안이 확산됐다.
그러자 해외 투자자와 금융기관들은 아시아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위험을 이전보다 훨씬 민감하게 보기 시작했다.
한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이미 기업 부실과 금융기관의 취약성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해외에서 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지면서 문제가 한꺼번에 드러났다.
IMF에 따르면 1997년 태국에서 위기가 시작된 뒤 한국 금융·기업 부문의 취약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고, 10월 홍콩 주식시장 조정 이후 외국 금융기관들이 한국 은행에 제공하던 신용한도를 빠르게 줄이면서 외환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여기서 외환위기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원화로 빚을 졌다면 원화로 갚으면 된다.
하지만 해외에서 달러를 빌렸다면 달러로 갚아야 한다.
그런데 해외 금융기관이 더 이상 달러를 빌려주지 않는다면?
한국의 금융기관과 기업은 기존에 빌린 달러를 갚기 위해 보유하고 있던 달러를 사용해야 한다.
달러가 부족해지면 원화 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다.
그리고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달러로 갚아야 할 빚의 원화 환산액은 더 커진다.
따라서
외화 유동성 부족 → 원화 가치 하락 → 외화부채 부담 증가 → 기업·금융기관의 불안 확대
라는 악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1997년 11~12월 환율은 급격하게 상승했고, 한국은 결국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 자금 지원을 요청하게 된다. 1997년 12월 4일 IMF와의 대기성 차관 협약이 체결됐다.
8. 그래서 1997년 위기는 ‘갑자기’ 발생한 것처럼 보였지만
1997년 11월과 12월의 상황만 보면 위기는 정말 갑자기 찾아온 것처럼 보인다.
환율이 급등하고, 기업이 부도나고, 금융시장이 얼어붙고, IMF 지원이 결정됐다.
하지만 그 이전의 흐름을 거꾸로 따라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1980년대 한국 경제는 기존의 정부 주도 방식에서 조금씩 벗어나기 시작했다.
↓
금융자율화와 시장개방이 확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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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수출이 크게 늘면서 한국 경제의 자신감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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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에는 자본시장과 금융시장의 개방이 더욱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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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들은 더 많은 자금을 빌려 대규모 투자를 확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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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은 해외에서 단기 외화자금을 조달하는 규모를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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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부터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대기업 부도가 발생했다.
↓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해외 금융기관들이 한국의 금융기관에 대한 신용을 줄였다.
↓
달러가 부족해졌다.
↓
결국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이렇게 보면 1997년 위기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사건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1980년대의 경제자유화나 1990년대의 개방 자체가 곧바로 위기의 원인이었다고 단순하게 말할 수도 없다.
개방은 한국 경제가 세계시장과 연결되고 자본을 활용할 수 있게 만든 중요한 변화였다.
문제는 개방의 속도와 금융기관의 위험관리, 기업의 과도한 차입, 감독체계의 부족 등이 서로 결합하면서 충격에 취약한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었다. IMF도 당시 자본 자유화가 금융시스템의 건전성 감독과 충분히 조율되지 못했고, 기업·금융 부문의 취약성이 외부 충격에 대한 경제의 취약성을 높였다고 평가했다.
따라서 1997년 외환위기를 이해하는 핵심 질문은
“누가 잘못했는가?”
만이 아니다.
경제사에서 더 중요한 질문은
“왜 당시 한국 경제는 외부에서 돈이 조금만 끊겨도 전체 시스템이 흔들릴 만큼 취약해져 있었는가?”
이다.
그리고 이 질문을 따라가면 1997년 이후 한국 경제가 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는지도 이해할 수 있다.
기업 구조가 바뀌고, 은행이 바뀌고, 금융시장이 바뀌었다.
노동시장도 큰 변화를 겪었다.
그리고 한국 경제는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세계 금융시장과 연결되었다.
1997년은 단순히 “IMF에서 돈을 빌린 해”가 아니었다.
한국 경제가 정부·은행·대기업을 중심으로 성장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 시스템으로 이동하게 된 거대한 전환점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이 남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제부터 우리가 오늘날 익숙하게 보는 구조조정, 비정규직, 외국인 투자, 재벌개혁, 금융시장 개방, IT산업의 성장, 그리고 세계화된 한국 경제가 본격적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