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한국 경제는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공장이 생겼다.
수출이 늘었다.
사람들은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섬유와 의류 같은 노동집약적 산업이 성장했다.
그런데 경제가 성장하면서 새로운 문제가 나타났다.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계속 섬유와 신발을 만들어 수출할 것인가?
아니면 더 많은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산업으로 넘어갈 것인가?
1970년대 한국은 후자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중심에
중화학공업화
가 있었다.
1. 중화학공업이란 무엇일까?
먼저 이름부터 어렵다.
중화학공업은 쉽게 말하면 대규모 자본과 설비, 기술이 필요한 산업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대표적인 것이
- 철강
- 조선
- 자동차
- 기계
- 석유화학
- 비철금속
같은 산업이다.
섬유공장을 생각해보자.
상대적으로 적은 자본으로 공장을 만들 수 있고 많은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반면 철강공장을 만들려면 거대한 설비와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조선소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를 만들려면 부품업체와 기계산업까지 함께 필요하다.
즉,
중화학공업은 하나의 공장을 만드는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체를 만드는 문제였다.
2. 그런데 왜 굳이 어려운 길을 선택했을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한국은 아직 가난했다.
자본도 부족했다.
기술도 부족했다.
그런데 왜 굳이 돈이 많이 드는 산업을 선택했을까?
한 가지 이유는 기존의 노동집약적 수출만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60년대 한국의 주요 수출품은 섬유, 의류, 합판, 신발 등 노동집약적인 제품이었다.
이 산업들은 한국이 가진 비교적 풍부한 노동력을 활용하기에 적합했다.
하지만 임금이 올라가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또한 기술 수준이 낮은 제품은 다른 개발도상국과 경쟁해야 한다.
결국 이런 질문이 등장한다.
“언제까지 값싼 노동력만으로 경쟁할 수 있을까?”
중화학공업은 이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었다.
3. 산업의 ‘두 번째 단계’를 만들려고 했다
경제성장이 계속되면 산업도 변한다.
처음에는 노동력을 많이 사용하는 산업이 성장한다.
그러다가 소득과 임금이 높아지면 더 높은 생산성과 기술을 가진 산업으로 이동할 필요가 생긴다.
한국 정부가 생각한 방향도 이와 비슷했다.
단순히 물건을 많이 만드는 나라에서
기계와 소재를 만들고, 다른 산업에 필요한 부품과 설비까지 생산하는 나라
로 바꾸려 한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을 생각해보자.
자동차 한 대를 만들려면 철강이 필요하다.
기계가 필요하다.
석유화학 제품도 필요하다.
수많은 부품이 필요하다.
따라서 자동차 산업을 키우면 다른 산업도 함께 성장할 수 있다.
이것이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려 했던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4. 정부가 직접 방향을 정했다
1973년 정부는 중화학공업화 선언을 발표했다.
그리고 철강,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 석유화학 등을 전략 산업으로 육성했다.
중요한 것은 여기서 정부가 단순히
“기업 여러분, 열심히 해주세요.”
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정부는 금융과 세제, 투자, 산업입지, 인프라 등을 활용해 특정 산업에 자원을 집중했다.
즉,
시장이 알아서 산업구조를 바꾸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정부가 산업구조의 방향을 정하려고 한 것이다.
이것은 1960년대의 수출정책보다 훨씬 더 적극적인 산업정책이었다.
5. 대표적인 사례가 포항제철이었다
중화학공업화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철강이다.
철강은 자동차에도 필요하고,
조선에도 필요하고,
건설에도 필요하고,
기계산업에도 필요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다른 산업의 기초가 되는 산업이다.
그래서 한국은 대규모 제철소 건설에 나섰다.
그 결과 만들어진 기업이 오늘날의 포스코다.
POSCO
포항제철소는 1973년 첫 쇳물을 생산했다.
당시 한국 경제 규모를 생각하면 상당히 큰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제철소 하나가 아니다.
철강산업이 성장하면
건설업이 성장하고,
기계산업이 성장하고,
자동차산업이 성장하고,
조선업도 성장할 수 있다.
즉,
산업의 기반을 먼저 만드는 전략이었다.
6. 조선업도 같은 논리였다
조선업 역시 엄청난 자본이 필요한 산업이다.
배를 만들려면 넓은 부지가 필요하다.
대형 설비가 필요하다.
철강이 필요하다.
수많은 부품이 필요하다.
그리고 숙련된 노동력이 필요하다.
한국이 처음부터 조선업에 강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부는 대규모 조선소 건설과 산업 육성을 추진했고, 기업들도 이에 참여했다.
대표적인 기업이 현대였다.
HD Hyundai
현대중공업은 1972년 조선소 건설을 시작했고, 1974년 첫 선박을 인도했다.
여기에서도 같은 구조가 나타난다.
철강 → 조선 → 기계 → 부품 → 수출
하나의 산업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산업 사이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이다.
7. 그런데 여기에는 위험도 있었다
중화학공업은 규모가 크다.
따라서 실패했을 때의 비용도 크다.
섬유공장이 실패하면 공장 하나가 문을 닫을 수 있다.
하지만 대규모 제철소나 조선소가 실패하면 국가와 금융기관, 기업이 함께 큰 부담을 떠안게 된다.
그래서 중화학공업화는 높은 기대수익과 높은 위험을 동시에 가진 전략이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한국의 산업화가 단순히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선택된 결과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자원을 집중했고,
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했으며,
금융기관이 자금을 공급했다.
그만큼 실패했을 때의 부담도 경제 전체로 확산될 수 있었다.
8. 그리고 이 과정에서 대기업이 커지기 시작했다
중화학공업에는 막대한 자본이 필요하다.
작은 기업이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정부의 산업정책과 대기업의 투자가 결합했다.
삼성, 현대, LG, 대우 등 대기업집단이 여러 산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기업 규모가 커졌다는 것이 아니다.
한국 경제에서
“국가가 산업을 선택하고,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담당하는 구조”
가 점점 강해졌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재벌 중심 경제구조를 이해하려면 이 시기를 빼놓기 어렵다.
9. 하지만 중화학공업화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다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의 공장과 일자리가 늘었다.
수출도 증가했다.
산업 생산능력도 커졌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 문제도 심각했다.
1970년대에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이 중요한 사회적 문제였다.
특히 노동집약적 산업에 종사하던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은 이러한 노동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따라서 산업화를 이야기할 때
공장이 몇 개 생겼는가
만 볼 수는 없다.
그 공장에서
누가 얼마나 일했고, 어떤 조건에서 일했는가
도 함께 봐야 한다.
10.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지역이었다.
중화학공업은 아무 곳에서나 발전하기 어려웠다.
항구가 필요하기도 하고,
전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대규모 공업단지가 필요하기도 했다.
그래서 산업시설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었다.
울산, 포항, 창원, 여수 등지에 대규모 산업단지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해당 지역의 경제를 크게 변화시켰다.
농업 중심의 지역이 공업도시로 변하기도 했다.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아 이동했다.
도시가 성장했다.
반면 모든 지역이 똑같이 산업화된 것은 아니었다.
산업화는 지역의 모습까지 바꾸는 과정이었다.
11. 그리고 국제정세도 무시할 수 없다
중화학공업화를 단순히 경제성장의 문제로만 보면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된다.
1970년대 한국은 냉전의 한가운데 있었다.
북한과의 군사적 긴장도 컸다.
박정희 정부는 이러한 안보 환경 속에서 방위산업과 중화학공업을 연결해 생각했다.
기계와 철강, 화학, 전자산업을 발전시키면 경제뿐 아니라 군사적 생산능력도 높일 수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중화학공업화에는
경제적 목적과 안보적 목적이 함께 존재했다.
이것이 1970년대 산업정책을 이해할 때 중요한 부분이다.
12. 그러던 중 석유위기가 발생했다
그런데 한국 경제에 예상하지 못한 충격이 찾아왔다.
1973년 제1차 석유파동이다.
석유 가격이 급격히 상승했다.
한국은 석유를 해외에서 수입해야 했다.
따라서 에너지 가격이 오르면 생산비용도 상승한다.
수출기업의 부담도 커진다.
물가도 영향을 받는다.
한국처럼 해외 원료와 에너지에 의존하는 경제에는 상당한 충격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석유파동 이후 중동 건설시장이 확대되면서 한국 기업이 해외 건설시장에 진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중동에서 건설공사를 하고 외화를 벌어들이는 기업들이 등장했다.
여기서 다시 한국 경제의 특징이 나타난다.
국내에서 부족한 자원을 해외시장으로 해결하려는 방식이다.
13. 결국 한국 경제는 점점 더 세계시장에 묶였다
1960년대에는
섬유와 의류를 수출했다.
1970년대에는
철강, 조선, 기계, 석유화학 같은 산업을 키웠다.
그리고 기업들은 국내시장만이 아니라 해외시장을 목표로 움직였다.
경제의 규모가 커질수록 해외시장에 대한 의존도도 커졌다.
이것은 이후 한국 경제의 장점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취약점이 되기도 했다.
세계경제가 좋으면 수출이 늘어난다.
하지만 세계경제가 흔들리면 한국 경제도 영향을 받는다.
이 특징은 훗날 외환위기와 세계 금융위기를 이해할 때도 다시 등장한다.
14. 그래서 1970년대를 어떻게 봐야 할까?
1970년대 한국 경제를 한 문장으로 평가하기는 어렵다.
분명 산업의 규모가 크게 확대되었다.
철강과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이후 한국 경제의 핵심 산업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수출능력도 커졌다.
대기업의 규모도 확대되었다.
도시와 산업단지도 빠르게 성장했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조건,
지역 격차,
기업과 금융의 결합,
대기업 집중,
정부의 강력한 경제개입
같은 문제도 함께 나타났다.
따라서 경제사를 공부할 때는
“성공했는가?”
라는 질문보다 먼저
“무엇을 얻었고, 무엇을 그 과정에서 만들어냈는가?”
라고 질문하는 편이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15. 1960년대와 1970년대는 어떻게 연결되는가?
지금까지의 흐름을 한 번 정리해보자.
1960년대
한국은 자본과 외화가 부족했다.
↓
값싼 노동력을 활용했다.
↓
섬유·의류 등 경공업 제품을 수출했다.
↓
수출을 통해 외화를 벌었다.
↓
경제 규모가 커졌다.
↓
하지만 노동집약적 산업만으로는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1970년대
더 높은 부가가치를 가진 산업을 만들려고 했다.
↓
철강·조선·기계·석유화학 등을 육성했다.
↓
정부가 금융과 자원을 집중했다.
↓
대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확대했다.
↓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했다.
이렇게 보면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는 갑자기 등장한 정책이 아니다.
1960년대 수출 중심 성장의 다음 단계로 볼 수 있다.
다음 글에서는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남는다.
“그렇게 빠르게 성장하던 한국 경제에 문제가 없었을까?”
물론 있었다.
1970년대 후반에는 경제가 과열되기 시작했고,
기업들은 막대한 돈을 빌려 투자를 확대했다.
그리고 1979년에는 제2차 석유파동과 정치적 혼란이 겹쳤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 경제는 또 한 번 방향을 바꾸게 된다.
금융과 산업을 둘러싼 구조조정이 시작되고,
수출 경쟁력의 변화가 나타나며,
대기업의 영향력도 더욱 커진다.
그리고 훗날 한국 경제를 뒤흔드는 사건으로 이어진다.
1997년 외환위기다.
하지만 그 위기를 이해하려면 먼저
“1980년대 한국 경제는 무엇이 달라졌는가?”
를 알아야 한다.
다음 글에서는 고도성장의 뒤편에서 쌓이기 시작한 한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