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한국 경제를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 중 하나가 있다.
수출이다.
반도체를 수출하고, 자동차를 수출하고, 선박을 수출하고, 화장품과 콘텐츠까지 해외로 나간다.
그런데 처음부터 한국이 수출을 잘하는 나라였던 것은 아니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은 농업 중심의 경제였다.
수출할 만한 상품도 많지 않았다.
그런 나라가 19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수출을 늘리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1. 처음부터 수출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1962년 시작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보면 정부가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수출경제를 구상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자본과 외화가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공장을 짓고 싶어도 돈이 필요했다.
기계를 수입하려면 달러가 필요했다.
석유와 원료를 수입하려면 역시 외화가 필요했다.
그런데 국내에서 충분한 자본을 모으기 어려웠다.
그래서 제1차 경제개발계획은 전력·석탄 같은 에너지 공급, 기간산업 확충, 농업 생산성 향상 등을 주요 과제로 삼았다. 동시에 수출 증대를 통한 국제수지 개선도 중요한 목표로 제시했다.
즉, 문제는 단순히
“한국도 잘살아 보자.”
가 아니었다.
좀 더 현실적인 문제였다.
“성장하려면 필요한 돈과 외화를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2. 공장을 만들려면 돈이 필요했다
경제성장을 위해 공장을 짓는다고 생각해보자.
공장 건물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기계가 필요하다.
원료가 필요하다.
기술도 필요하다.
전기도 필요하다.
그런데 당시 한국은 이것을 모두 국내에서 조달하기 어려웠다.
결국 외국에서 기계와 원료를 사와야 했다.
그런데 외국에서 물건을 사려면 외화가 필요하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생긴다.
돈이 없는데 공장을 지어야 하고, 공장을 지으려면 외국에서 물건을 사야 한다.
이 상황에서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외국에서 자본을 빌리거나,
외국의 원조를 받거나,
아니면 무언가를 외국에 팔아서 외화를 벌어야 했다.
이것이 수출의 중요한 출발점이었다.
3. 그래서 ‘수출’은 선택이면서 동시에 제약이었다
수출을 하면 외화를 벌 수 있다.
외화를 벌면 기계와 원료를 수입할 수 있다.
기계와 원료를 수입하면 공장을 돌릴 수 있다.
공장이 돌아가면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
그 상품을 다시 수출한다.
이렇게 연결된다.
수출 → 외화 획득 → 기계·원료 수입 → 생산 확대 → 다시 수출
한국은 이 구조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반도체나 자동차를 수출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무엇을 팔 수 있을까?
4. 한국이 가지고 있던 것은 ‘값싼 노동력’이었다
당시 한국은 자본과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아니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풍부한 자원이 하나 있었다.
노동력이다.
특히 낮은 임금으로 많은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었다.
그래서 한국은 노동집약적인 경공업 제품을 만들어 해외시장에 판매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섬유와 의류, 신발, 가발 같은 제품들이 대표적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에서도 1960년대 수출품목이 노동집약형 경공업 제품으로 다변화되면서 가발 등이 주요 수출품으로 부상했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상당히 현실적인 선택이었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지 않은 제품부터 시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생산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했다.
따라서 당시 한국이 가진 조건과 비교적 잘 맞았다.
5. ‘값싼 노동력’은 경제성장의 중요한 자원이 되었다
오늘날에는 노동자의 임금이 낮다는 것을 경제적 장점으로만 이야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당시 국제시장에서 한국 제품의 가격 경쟁력을 만드는 데에는 낮은 노동비용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부는 수출기업을 지원했고, 기업들은 노동집약적인 제품을 생산해 해외에 판매했다.
그 결과 수출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이라는 문제도 함께 존재했다.
따라서 수출 중심 성장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수출이 늘었다.”
라는 사실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 수출품을
누가 만들었고, 어떤 조건에서 만들었는가
도 함께 봐야 한다.
경제성장은 숫자로 나타나지만, 그 숫자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노동이기 때문이다.
6. 정부는 시장에 그냥 맡겨두지 않았다
1960년대 한국 경제에서 또 하나 중요한 특징은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민간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인정하면서도, 전력·기간산업·사회간접자본 같은 핵심 부문에는 정부가 직접 관여하거나 정책적으로 유도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쉽게 말하면 이런 구조였다.
기업이 알아서 성장하도록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방향을 정하고 필요한 조건을 만들어주는 방식이었다.
전기를 공급하고,
도로와 항만을 건설하고,
금융과 외자를 동원하고,
수출기업을 지원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하는 식이다.
한국의 산업화에서 국가가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이유다.
7. 그런데 첫 번째 계획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여기서 조금 재미있는 사실이 나온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라고 하면 흔히 아주 치밀하게 만들어진 계획을 그대로 실행해서 성공한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제1차 계획은 상당히 높은 성장 목표를 세웠지만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가 국내 자본을 동원하기 위해 은행 국유화와 통화개혁까지 추진했지만 계획대로 자금을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계획은 수정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변화가 생겼다.
수입대체 중심의 공업화에서 수출 중심의 공업화로 방향이 더욱 분명하게 이동한 것이다.
8. 왜 국내 시장이 아니라 해외시장인가?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하나 나온다.
왜 그냥 한국에서 많이 팔면 안 되었을까?
당시 한국의 국내 시장은 크지 않았다.
인구는 있었지만 국민들의 소득 수준이 낮았다.
사람들이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대량으로 구매할 만큼 소비시장이 크지도 않았다.
반면 해외에는 훨씬 큰 시장이 있었다.
따라서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작은 국내시장만 바라보는 것보다 해외시장을 목표로 생산 규모를 키우는 것이 유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수출을 통해 벌어들인 외화는 다시 기계와 원료를 수입하는 데 사용될 수 있었다.
이것이 수출 중심 성장전략의 기본 논리였다.
9. 그러자 경제의 목표 자체가 달라졌다
수출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기업이 보는 세상이 달라진다.
국내 소비자에게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해외 소비자가 원하는 가격과 품질을 맞춰야 한다.
납기를 지켜야 한다.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
국제시장에서 경쟁해야 한다.
결국 기업은 점점 국제시장을 기준으로 생산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수출액이 늘었다는 것 이상의 변화였다.
한국 경제가 점점 세계시장과 연결된 생산경제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10. 수출은 기업만의 일이 아니었다
1960년대부터 수출은 국가적인 목표가 되었다.
정부는 수출을 장려하고 수출 실적을 관리했다.
수출기업에 금융과 세제 측면의 지원을 제공하기도 했다.
1965년 이후에는 수출진흥 정책이 더욱 본격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재미있는 현상이 나타난다.
기업의 성과가 곧 국가의 성과와 연결되기 시작했다.
기업이 수출을 많이 하면 외화를 벌어온다.
외화를 벌어오면 국가의 국제수지가 개선된다.
그 돈으로 다시 기계와 원료를 수입한다.
그러면 생산이 늘어난다.
생산이 늘면 다시 수출할 수 있다.
기업의 수출 → 국가의 외화 → 산업 투자 → 생산 증가 → 다시 수출
이라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11. 그리고 실제 수출액도 빠르게 증가했다
이 전략이 현실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 수출이 빠르게 증가했고, 1971년에는 한국의 수출액이 10억 달러를 넘어섰다.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특별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출발점을 생각해보면 상당한 변화다.
1950년대까지 한국은 외국의 원조에 크게 의존했다.
그런데 이제는 해외에 상품을 팔아 외화를 벌기 시작했다.
경제의 기본적인 외부 관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12. 그런데 수출경제의 이면도 있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앞의 글에서 사용했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성장하면 모두가 똑같이 좋아지는가?”
수출이 증가했다.
공장이 늘었다.
도시의 일자리가 늘었다.
외화를 벌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낮은 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노출되기도 했다.
농촌과 도시의 격차도 중요한 사회문제가 되었다.
빠른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경제적 불균형도 함께 나타났다.
따라서 1960년대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해할 때도
성장률과 수출액만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누가 성장의 비용을 부담했는지,
누가 그 결과를 더 많이 가져갔는지,
어떤 지역과 산업에 투자가 집중되었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13. 여기서 한국 경제의 중요한 특징이 만들어진다
1960년대의 변화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한국은 국내에서 필요한 것을 만드는 경제에서, 해외에 팔기 위해 생산하는 경제로 점차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정부
기업
노동자
외국 자본
해외시장
이 서로 연결되었다.
이 구조는 이후 한국 경제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 한국 경제가 수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역사적 구조와 연결되어 있다.
14. 그런데 한 가지 더 중요한 변화가 있었다
1960년대의 수출품을 보면 아직 섬유와 의류 같은 노동집약적인 제품이 중심이었다.
그렇다면 다음 질문이 생긴다.
“한국은 언제부터 철강,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같은 산업을 만들기 시작했을까?”
여기에서 한국 경제는 또 한 번 방향을 바꾼다.
단순히 값싼 노동력으로 제품을 만들어 수출하는 것에서 벗어나,
더 많은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산업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것이 1970년대의 중화학공업화다.
다음 글에서는
다음 질문은 조금 달라진다.
“왜 한국 정부는 굳이 중화학공업을 육성하려 했을까?”
철강공장을 만들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자동차와 조선업도 마찬가지다.
석유화학공업은 더 많은 자본과 기술을 요구한다.
그런데 당시 한국은 아직 그렇게 부유한 나라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중화학공업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한다.
여기에는 단순한 경제성장만이 아니라 수출 확대, 산업구조 변화, 안보와 국제정세까지 얽혀 있었다.
다음 글에서는
“한국은 왜 중화학공업에 베팅했을까?”
라는 질문을 통해 1970년대 한국 경제로 넘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