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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조선의 경제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by Secret Shareholder 2026. 9. 28.

앞의 글에서 개항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졌다.

시장이 열린다면, 그 시장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것일까?

개항 이후 조선은 일본을 비롯한 외국과 연결되기 시작했다.

쌀이 일본으로 수출되고, 외국산 면직물이 조선에 들어왔다.
새로운 상품과 돈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시장의 범위도 넓어졌다.

그런데 1910년 조선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다.

이제 질문은 조금 달라진다.

“조선의 경제는 얼마나 발전했는가?”가 아니라,
“조선의 경제는 어떤 방식으로 바뀌었으며, 그 변화의 방향은 누가 결정했는가?”

이 질문으로 일제강점기의 경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가장 먼저 바뀐 것은 ‘땅’이었다

1910년대 일제는 조선에서 토지조사사업을 실시했다.

토지의 소유 관계를 조사하고 토지대장을 정비하는 작업이었다.

겉으로 보면 상당히 근대적인 제도처럼 보인다.

토지의 소유권을 문서로 명확하게 만들고, 토지를 하나의 법적 재산으로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근대적인 토지 소유권과 토지 등록 제도가 정비되는 효과도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제도가 누구의 기준으로,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었느냐였다.

토지조사 과정에서 신고와 소유권 인정 절차가 중요해졌고, 기존의 관습적 권리 가운데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권리도 생겼다. 토지조사사업의 토지 소유권 판정과 관련해서는 당시 제도의 강압성에 대한 문제 제기도 있었다.

결국 토지는 단순히 농사를 짓는 공간에서 벗어나,

법적으로 등록되고 거래될 수 있는 재산으로 더욱 명확하게 바뀌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문제가 하나 생긴다.

토지가 상품이 되고 소유권이 명확해진다면,

토지를 가진 사람과 가지지 못한 사람 사이의 차이도 더 명확해질 수 있다.

경제 제도가 근대화된다는 것과
모든 사람이 경제적으로 나아진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니다.

이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조선의 농업은 일본의 식량 수요와 연결되었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쌀이었다.

개항 이후에도 조선의 쌀은 일본 시장과 연결되고 있었지만, 식민지 지배가 시작되면서 이 관계는 더욱 체계적으로 확대되었다.

특히 1920년대에는 산미증식계획이 추진되었다.

목표는 간단했다.

조선에서 쌀을 더 많이 생산하는 것.

수리시설을 확충하고 농업 생산성을 높여 쌀 생산량을 늘리려 했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늘어난 쌀을 일본으로 공급하는 것이었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에서도 산미증식계획의 기본 목표가 토지·농사 개량을 통한 미곡 증산과 그 증산미의 일본 반출이었다고 설명한다.

여기서 재미있는 점이 있다.

농업 생산성이 올라가는 것 자체는 반드시 나쁜 일이 아니다.

수리시설이 좋아지고 농업 기술이 발전하면 생산량이 늘어날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가 무엇일까?

“무엇을 위해 생산성을 높였는가?”

라는 질문이다.

조선의 농업이 조선 내부의 식량 문제와 농민의 생활 향상을 중심으로 조직된 것인지,

아니면 일본의 식량 수요를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조직된 것인지에 따라 같은 생산량 증가도 의미가 달라진다.


3. 쌀을 많이 생산했는데, 농민의 삶은 왜 어려워졌을까?

여기서 또 하나의 역설이 등장한다.

쌀 생산을 늘리는 정책이 시행되었는데, 농민 모두가 더 잘살게 된 것은 아니었다.

산미증식계획은 토지개량과 농사개량을 추진했지만, 농촌에서는 지주와 소작농 사이의 갈등도 커졌다.

국사편찬위원회 자료는 1920년대 이후 소작쟁의가 확산되었고, 농업정책과 식민지 지주제의 형성이 농민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것을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농지에서 쌀이 더 많이 생산된다.

그런데 그 농지를 소유한 사람과 실제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 다르다면?

생산량이 증가한다고 해서 증가한 소득이 모두 농민에게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경제를 볼 때는 단순히

“생산량이 얼마나 늘었는가?”

만 보면 안 된다.

함께 봐야 하는 것이 있다.

“그 생산으로 발생한 소득은 누구에게 돌아갔는가?”

이 질문이 경제사를 공부할 때 상당히 중요하다.


4. 그렇다면 일제강점기에는 산업화가 없었을까?

여기서 또 하나의 복잡한 문제가 등장한다.

일제강점기에는 분명히 산업과 인프라가 확대되었다.

철도가 놓이고 항만이 정비되었다.

전력과 광업 개발이 이루어졌고, 공장도 늘어났다.

특히 1930년대 이후에는 공업화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질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제강점기는 조선의 산업화를 가져온 시기라고 볼 수 있는 것 아닌가?”

실제로 1930년대 이후 조선에서는 금속·화학 등 중화학공업이 빠르게 성장했고, 특히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공업지대가 형성되었다.

이 사실 자체를 부정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그 산업화의 성격이다.


5. 공장이 생겼다는 사실과 ‘누구를 위한 산업화인가’는 다른 문제다

1930년대 일본은 대륙 침략을 확대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조선의 경제도 일본 제국의 경제권 안에서 재편되었다.

조선은 식량과 원료를 공급하는 역할뿐 아니라 점차 공업 생산의 역할도 맡게 되었다. 특히 북부 지역에서는 수력발전, 금속, 화학 등과 관련된 산업이 확대되었다.

그런데 공장이 늘어난다고 해서 그 공장의 소유권과 이익까지 자동으로 조선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당시 공업 부문에서 일본 자본의 비중이 컸고, 경영진과 상급 기술자 역시 일본인이 주를 이루었다는 자료가 있다.

따라서 여기서도 두 가지를 분리해서 볼 필요가 있다.

산업의 규모가 커지는 것

과

그 산업을 누가 소유하고 통제하는 것

은 서로 다른 문제다.

이 차이를 구분하지 않으면 역사를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들게 된다.


6. 철도도 마찬가지다

철도가 만들어졌다.

항구가 정비되었다.

전력시설이 만들어졌다.

이런 시설은 이후 한국 경제의 발전에도 영향을 미친 중요한 물적 기반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시설이 처음부터 한국인의 경제 발전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철도는 사람을 이동시키지만 동시에 물자를 이동시키기도 한다.

항구 역시 사람을 실어 나르지만 동시에 쌀과 원료, 상품을 수출입하는 통로가 된다.

따라서 경제 인프라를 볼 때는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무엇이 만들어졌는가?”

그리고 한 단계 더 나아가,

“왜 그곳에 만들어졌으며, 무엇을 이동시키기 위해 만들어졌는가?”

라고 물어야 한다.

인프라는 그 자체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이 어떤 경제구조 속에서 사용되었는지가 중요하다.


7. 그래서 일제강점기의 경제를 하나의 단어로 설명하기 어렵다

여기까지 보면 상당히 복잡해진다.

토지제도는 근대적인 방식으로 정비되었다.

농업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사업도 추진되었다.

철도와 항만이 확대되었다.

공업도 성장했다.

그런데 동시에 경제의 중요한 부분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전쟁 수행이라는 목적에 맞추어 조직되었다.

토지와 농업에서는 농민과 지주 사이의 격차와 갈등이 커졌다.

산업에서는 일본 자본의 영향력이 컸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전쟁을 위해 물자와 노동력, 자금이 더욱 강하게 동원되었다.

그러므로 단순히

“일제강점기에는 경제가 발전했다.”

라고 말하는 것도 부족하고,

반대로

“아무런 경제적 변화가 없었다.”

라고 말하는 것도 사실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더 정확한 질문은 이것이다.

“경제는 성장했지만, 그 성장의 구조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8. 경제사를 볼 때 ‘성장률’보다 중요한 질문

이제 우리가 경제사를 공부하는 방식도 조금 달라질 수 있다.

어떤 시대의 경제가 성장했다고 하자.

그러면 보통 생산량, 무역량, 공장 수, 철도 길이 같은 숫자를 생각한다.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다음 네 가지를 함께 봐야 한다.

① 무엇이 생산되었는가?

② 누가 생산했는가?

③ 누가 소유했는가?

④ 생산된 부와 이익은 어디로 갔는가?

이 네 가지를 보면 경제의 구조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질문은 일제강점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의 기업과 산업을 볼 때도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


9. 개항에서 식민지 경제까지

앞의 글에서 개항을 이야기했다.

개항은 조선 경제에 새로운 시장을 가져왔다.

하지만 시장이 열린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같은 조건으로 경쟁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1910년 이후에는 그 시장의 조건 자체를 결정할 수 있는 권력도 달라졌다.

이렇게 보면 경제사의 흐름이 조금 선명해진다.

조선 후기

→ 농업 중심의 경제

→ 개항

→ 국제시장과 연결

→ 식민지화

→ 토지·농업·무역 구조의 재편

→ 1930년대 공업화

→ 전쟁경제와 동원

이것은 단순한 경제성장의 이야기가 아니다.

경제의 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다음 질문

그렇다면 다음으로 궁금해지는 것이 있다.

1945년 일본이 물러간 뒤, 조선의 경제는 바로 한국의 경제가 되었을까?

그렇지 않다.

해방 직후 한국 경제에는 식민지 시기에 만들어진 공장과 철도, 항만, 금융기관 등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운영할 사람과 자본, 제도, 시장은 또 다른 문제였다.

게다가 남과 북의 경제 구조도 크게 달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전쟁이 일어난다.

따라서 다음 단계에서 살펴봐야 할 질문은 이것이다.

“해방은 한국 경제를 어디에서 출발하게 만들었을까?”

이 질문부터 보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한국 경제의 출발점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